기억에 남는 매매
June 25, 2022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돌파하면서 깊은 침체에 빠져있던 증시의 암운이 더욱 깊어졌다. 고물가, 고금리에 이어 환율까지 정점을 찍으면서 나올 수 있는 악재는 모두 반영되고 있는 시황이다.
지난밤 국내증시와 미국증시가 모처럼 반등을 하긴 했지만 과매도 여건에서 주가가 일시적으로 오르는 전형적인 베어마켓 랠리였을 뿐, 악재는 해소된 것이 없고, 호재는 전무한 상황이므로 추가 상승의 여력은 크지 않다고 본다.
지금은 큰 거래는 지양하고, 현금을 쥐고 기다릴 때다.
현재 어떤 포지션도, 종목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작금의 하락장에 대한 나의 인식은 특별히 부정적일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려와 부정으로 팽배한 기사들을 보면 기분이 처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신비가들의 주장대로 인류의 의식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오늘처럼 기분이 처질 때면 좋았던 때를 기억나게 하는 음악을 듣거나, 좋았던 매매들을 떠올리며 기분전환을 하곤 한다.
숱한 매매를 해왔기에, 기억에 남는 매매도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너무 먼 과거로 갈 것도 없이 작년 한 해 동안의 좋았던, 그래서 기억에 남는 매매 몇 가지를 회상해 본다.
1. 2021/2/15 KTH (현 케이티 알파)
2월 10일, KTH는 쿠팡 관련주로서 쿠팡이 추진 중인 나스닥 상장 이슈가 재부각되며 시장의 관심을 받았다. 10년 동안 이어져온 이슈라 식상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날 투자가 아닌 트레이딩을 하고 있었다.
대장주인 동방이 상한가로 마감하는데도 불구하고, 2등주였던 KTH가 좀 과도하게 누른다고 생각하여 승부를 봐야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렇게 줄줄이 매수했는데 동시호가도 별 볼일 없었고, 시간외에서도 1%가량 하락했다.
동방이 시간외에서 상한가가 풀리지 않는다면 당연히 KTH가 2~3% 이상은 상승하리라 봤기에 설 연휴를 앞두고 괜스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던 이틀 뒤, 일제히 기사들이 떠올랐다.
'쿠팡 창업주 김범석 10년 꿈 실현, 쿠팡 뉴욕증시에 상장키로... 기업공개(IPO) 신청.'
뉴스는 연휴 내내 쿠팡의 뉴욕시장 상장으로 도배되고 있었고, 나는 최고의 기분으로 남은 연휴를 보낼 수 있었다.
연휴가 끝나고 장이 재게 되던 2월 15일, KTH는 27%의 갭이 떴고, 나는 절반을 분할매도 했다. 그날 상한가를 닫은 KTH는 다음 거래일에도 상한가를 갔고, 그다음 거래일에도 27%까지 급등이 나왔다.
남은 물량의 수익금을 담보로 나는 이틀간 마음 편히 트레이딩을 할 수 있었다.
나는 KTH로부터 새해의 큰 복을 받은 기분이었다.
2. 2021/7/7 씨젠
코로나19 인도발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유행하면서 씨젠을 필두로 진단키트 관련주들이 6월 말부터 강세를 보이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델타 변이가 가을에 대유행할 것이라 내다보고 있었는데 트레이더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장기(?) 전망이 아닌 당장 오늘 내일의 확진자 수였다.
나는 일일 확진자수 천명 돌파가 사람들의 심리에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 봤고, 이것이 임박했다고 느꼈다.
그런데 씨젠은 내 단기 전망과는 반대로 7월 들어 지지부진한 박스권 흐름을 이어가고 있었다.
7월 5일 나는 스윙계좌로 씨젠을 매수하기 시작했다. 오전에 1차 매수를 하고, 종가에 시세가 오르면 추가 매수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날 씨젠은 예상과 다르게 힘이 없었고, 종가 저가 -2.14%로 마감을 했다. 오후에 오전에 산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서 추가 매수를 하긴 했지만 막상 종가 저가로 마감하니, 스윙계좌일지라도 비중을 너무 몰아서 과하게 실은 게 아닌가 싶었다.
다음 날인 6일 전날의 종가를 저항으로 오전부터 강한 하락세가 이어졌다. 개장 30분 만에 4%가 넘게 빠졌는데 나는 이 흐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상승 직전에 일시적으로 하락 분위기를 주어 과매도를 유도하는 메이저의 휩소라고 판단한 나는 KTH 때 그랬듯 승부를 봐야 한다는 직감을 느꼈다. 하여 다른 두 계좌로도 씨젠을 매수하기 시작했다.
9:43분 78,500원이 그날의 저가였는데 이미 세 계좌 합산 과도한 비중이 실렸고, 저가를 깰 때까지 추가 매수는 보류하기로 한 채 기다렸다.
전날부터 매수한 스윙계좌는 장중 마이너스 금액이 상당했다. 하지만 나는 늦어도 며칠 안에 이 상황이 크게 역전되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날 오후장에 나는 누군가와의 통화에서 곧 확진자가 천명을 돌파할 거고, 씨젠이 기회를 줄 거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오래 기다릴 것도 없었다. 바로 그날, 정규장이 끝나고 얼마 안 있어 갑자기 전일대비 확진자 수가 급하게 튀어 오르면서, 코로나 라이브에 일일 확진자 수가 천명을 돌파했다.
'단 14초 만에 감염', '옆을 스치기만 해도 감염' 등 그날 밤 갑자기 델타 변이의 과도한 공포를 조장하는 기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훗날 오미크론 변이가 유행하면서 일일 확진자 수 육십만 명을 돌파하기도 했지만 누구나 델타 변이 때 일일 확진자 수 천명 돌파 때를 훨씬 더 공포스럽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다음 날인 7월 7일, 씨젠은 5.8%의 갭이 떴고, 나는 세 계좌의 모든 물량을 시가 부근에서 모두 정리했다. 그날 씨젠은 종가 고가로 13.8%에 마감을 했고, 다음 날 5%의 추가 상승이 이어졌지만 아쉬움은 없었다.
나는 너무 일찍 냄새를 맡았고, 역대급 비중으로 강한 승부를 봤다는 것에 의미를 뒀다.
3. 2021/11/5 서연
제 20대 대통령 선거에 나설 국민의힘의 대통령 후보가 결정되는 날이었다.
시초부터 윤석열 테마주들이 강하게 튀어 오르는 반면, 홍준표 테마주들은 급락을 했다.
나 또한 윤석열 후보가 수월하게 이길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에 그런 움직임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 경선 결과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박빙이었다. 그것을 예측한 이들로 인하여 홍준표 테마주들도 시가를 회복하더니 강한 변동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테마주들은 한 쪽이 오를 때, 한 쪽이 내리는 시소게임을 이어갔는데 본게임은 2시부터였다. 나는 홍준표 테마주들이 아무리 강하게 움직일지라도 결과는 윤석열이 승리할 것이기 때문에 결과 발표 시간이 임박할수록 윤석열 테마주들만 매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2시가 좀 넘어 홍준표 테마주들이 줄 상승 vi에 진입하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하락 vi에 갇혔다.
이해가 안 되는 흐름이었다. 더군다나 주식을 시작한 이래로 이렇게 빠른 호가창의 움직임은 정말인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손을 쓸 겨를도 없었다.
시소게임을 하더라도 내가 예상한 눌림 지점을 깨진 않을 것이라 보고, 그 구간에 몰아서 물량을 걸어뒀는데 그것이 한 번에 체결되고, 눈 깜짝할 사이에 하락 vi까지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나는 두 후보의 판세를 박빙으로 보지 않았기에 그런 서연의 하락 vi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2분여간의 하락 vi가 끝나고, 곧바로 강한 반등이 나와서 일단은 수익으로 물량을 모두 비웠다. 이번엔 한국선재와 경남스틸로 대표되는 홍준표 관련주들이 하락 vi에 가있었다.
정상적인 움직임들이 아니라 생각되었고, 방금의 기회가 오늘의 최고의 기회였구나 싶었다. 결과 발표 시간이 임박할수록 윤석열 테마주들에게서 좀 전의 강한 변동성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 본 것이다.
3시쯤 되어 최종 결과가 발표되기 시작했다. 홍준표 테마주들이 왜 이렇게 잘 버티는 것인지 의아했다. 나는 또 한 번의 출렁임을 기대하며 서연을 하락 vi 좀 위에 5~6개의 호가에 걸쳐 매수를 걸어뒀다. 올 일도 없을 것이고, 온다 해도 일부만 체결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레버리지를 다 써서 폭넓게 걸어둔 것이었다. 생중계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 모를 예상 밖의 상황이 전개되면 곧바로 매수를 한 번에 풀기 위해 매수 전량 취소 버튼에 마우스의 커서를 옮겨놨다.
그런데 이번에도 순식간에... 그야말로 손쓸 겨를도 없이 하락 vi에 잠겨버렸다. 홍준표 테마주들은 반대로 상승 vi에 가 있었고...
나는 무슨 일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원희룡, 유승민에 이어 이제 막 윤석열의 득표수를 발표하고 있는데 그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TV 속의 윤석열의 표정이 어둡기 때문일까?,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세력이 방금 다 털어버린 걸까?, 부정선거인가?
짧은 시간 동안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한가에 잔량이 쌓이기 시작했고, 레버리지 풀로 그 상태에 놓인 나는 사기를 당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내 상황이 반전되었다. 윤석열의 최종 득표율이 47.85%라는 발표와 함께 박수 소리가 TV에서 흘러나왔고, 하한가에 잠겨있던 서연은 갑자기 5%, 10%, 15%, 20% 계속해서 호가를 올리고 있었다.
나는 거래를 시작한 이후로 처음으로 장중에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렇게 2분여의 하락 vi가 처음에는 하한가에 놓여있더니 결국 20% 이상 갭을 띄우며 풀렸다.
재료소멸. 나는 그 동시호가에 모든 물량을 매도했는데 그때 내가 물량을 전부 걸지 않았더라면 갭은 얼마나 더 떴을까 생각해 본다.
반대로 그날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한국스틸, 경남선재 등은 나의 서연이 하락 vi에 잠겨있을 때 상승 vi에 잠겨있더니, 이제는 하한가에 잠겨 있었다. 수북한 매도 잔량과 함께...
내 인생에서 가장 긴 2분이었고, 지옥과 천국을 오간 2분이었다.
그날은 확실히 내가 시장의 주인공이었을 것이다. 어느 누가 메인 계좌 레버리지 풀로 2분 만에 20% 이상의 수익을 거두겠는가.
물론 그날 이후, 며칠 동안 홍준표가 만약 경선에서 승리했다면?이라는 아찔한 상상도 이따금씩 하곤 했다. 그런데 그런 상상은 불필요하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윤석열의 승리를 확신했으며, 결국 그 믿음에 보답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