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 下
August 11, 2024
내 직업은 주식이나 선물을 거래하는 트레이더다.
이명에 걸렸던 트레이더.
2020년, 코로나19로 유동성이 급증하면서 주식시장은 그야말로 물 반 고기 반의 활황장이었다.
하지만 나는 5월까지도 매매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 의사, 저 의사를 찾아다녔고, 전국 팔도의 병원들도 찾아다녔다.
귀에서 끊임없이 들리는 요란한 소리 속에서 매매할 자신이 없었다. 아니, 인생을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시장이 아무리 좋아도, 주위에서 아무리 돈을 벌어도 내 관심사는 이명 극복뿐이었고, 그래야 제명까지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명완치 희망을 쏘는 이비인후과 의사들' 책의 저자들 중엔 이호기(소리이비인후과), 유신영(명동연세이비인후과), 박홍주(아산병원) 선생님을 만났다고 밝힌 바 있는데 그 외에도 수많은 이비인후과 전문의 선생님들과 상담을 했다.
훌륭한 선생님들도 있었고, 정말 이명환자가 절대 만나지 말아야 할 의사들도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당연히 청담소리이비인후과 이호기 선생님이다.
나는 그분이 이명 치료에 있어 대한민국 최고 명의라 생각한다. 이명은 어차피 병원에서 치료가 될 수 없고, 환자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이호기 선생님은 정말 마음으로 환자를 살펴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호기 선생님은 이명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나에게 일찍이 소리치료를 권유했다. 당시 다른 병원들에선 100만원 이상씩 받아 가며 소리발생기니 소리보청기니 하는 것들을 것을 판매했는데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통해 비슷한 음원들을 무료로 들을 수 있는 시대에 정말 웃기는 장사가 아닐 수 없었다.
소리이비인후과에선 음원을 메일로 보내줄 뿐이었다. 물론 청담소리이비인후과에서도 베개형 소리발생기를 판매하긴 했다. 나는 그것을 구매하려고 했지만 이호기 선생님은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듣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하셨다. 양심적인 분이셨다.
그렇게 소리치료를 꾸준히 하다 보면 나중엔 이명이 나에게 완전히 익숙해져서 그 소리를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는데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병원에서 보내준 음원이 유튜브로 자연의 소리를 크게 틀어 이명을 차폐시키는 것보단 이명을 덜 고통스럽게 들리게 해줬기 때문에 나는 꾸준히 음원을 들었다.
그리고 물 분수대를 여러 대 구매해서 집 곳곳에 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침대에 멍하니 누워 책장을 보고 있는데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2019년 8월에 출간된 톰 오브라이언의 '당신은 뇌를 고칠 수 있다' 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명동연세이비인후과의 유신영 선생님은 나에게 왜 이명의 이유를 찾으려 하냐며 버럭 짜증을 내시기도 하셨지만 나는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원인 없이 내가 이런 고통스러운 증상을 겪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무엇보다 원인을 찾아 해결하면 이명에서도 벗어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뇌 mri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음에도, 내 이명이 머리 어딘가의 문제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던 중 그 책의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책장에서 그 책을 꺼내 중간을 펼쳐보았다. 아무렇게나 펼친 책에서는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과 기대 만으로 약을 먹거나 수술을 받지 않아도 실제로 증상이 호전되는 플라시보 효과에 대해 설명하면서 미국의 신경과 전문의인 조 디스펜자의 '당신이 플라시보다' 책을 추천하고 있었다.
나는 순간 무언가를 느꼈다.
이거다 하는 직감.
나는 곧바로 그 책을 주문했고, '브레이킹'이라는 디스펜자의 다른 책도 함께 주문했다.
그렇게 '당신이 플라시보다'를 읽다 보니 그 책 안에선 뇌파 바이오피드백의 선구자이자 심리학자인 레스 페미의 '오픈 포커스 브레인'이라는 책도 추천했다. 당연히 그 책도 바로 주문해서 읽었다.
그러자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일단 부정적인 감정부터 걷어내야 했다.
어두운 감정을 몰아내고 호전될 거란 확실한 믿음만 가져도 치료 없이 암, 뇌졸중, 당뇨 등도 낫는다는 수많은 기록들을 봤는데 밑져야 본전이었다.
나는 그동안 이명 자체도 괴롭지만 평생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란 믿음 때문에 더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책들을 읽으며 이명 3개월 차가 훌쩍 넘었고, 만성이명이고 뭐고 다 잊고 나도 기적의 대상이 될 수 있으리란 맹목적인 희망을 가졌다. 그러자 변화가 시작됐다.
희망이란 정말 좋은 것이다. 희망을 가지는 것만으로 지옥에서 한 걸음씩 빠져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당신이 플라시보다' 책의 부록에 나오는 명상을 꾸준히 따라 했다.
디스펜자가 말하는 고양된 상태, 깊은 명상 상태. 레스 페미가 말하는 뇌파가 알파파 아래로 떨어져 의식이 몽롱한 세타파 상태에서, 이명에서 완전히 치유된 나를 상상하고, 또 상상했다.
한 번은 깊은 명상 상태에서 이명이 완전히 인식되지 않는 것을 느꼈다. 그 상태에서 잠시 머물기도 하며 나는 내가 완전히 치유될 수 있다는 믿음을 진정으로 갖게 되었고, 하루에도 몇 번씩 깊은 명상 상태에 빠져들곤 했다.
누군가에겐 이 글이 불편할 수도 있다. 나도 과거에 상상 만으로 현실이 된다느니, 온 우주가 돕는다느니 하는 시크릿 류의 책들을 읽으면 전혀 와닿지 않았다.
지금도 유튜브에선 성공팔이들이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느니, 저렇게 하면 돈이 들어온다느니 하는 것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모두가 성공할 수 없다. 자리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돈을 벌 수는 없다. 돈도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건강은?
내가 건강해진다고 누군가 건강을 잃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무엇보다 실질적인 사례들을 무시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에 따라 면역력이 변한다는 정신 신경 면역학, 생각에 따라 뇌의 구조가 변하는 신경가소성, 말기 암을 상상으로 없애는 사이먼튼 요법, 뇌종양을 물리치는 액터버그 박사의 상상 치유, 백혈병 잡는 상상 게임 바이오피드백, 고혈압과 당뇨를 치유하는 알파파 명상.
나는 그 수많은 사례들을 읽으며 나도 그들처럼 기적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다.
그리고 어느 날 이명이 사라졌다.
언제 있었냐는 듯 갑자기 사라졌다.
만성 이명으로 넘어간다는 3개월 차를 훌쩍 넘어, 거의 9개월 차에 나는 이명을 나에게서 완전히 떠나보냈다.
내 이야기가 이명 환자들에게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
대부분의 이명 환자들은 정말 극도로 어두운 감정에 지배되어 있다. 그것이 이명을 더 키우고 정말 만성으로 만든다.
특히 나처럼 천성적으로 예민하고 생각이 많은 사람에게 이명이 찾아온다면 그 사람은 죽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내가 처음 소리이비인후과를 찾아 신중욱 선생님께 들었던 "예민한 사람이 예후가 안 좋다." 는 말은 진리다.
하지만 그 말만으로 대번에 마음을 무디게 할 수 있는 이명 환자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청담소리이비인후과의 이호기 선생님이 대표적인 환자 예시로 들 만큼 이명으로 오랜 시간 고통을 받았던 사람이다.
하지만 결국 이명을 완벽하게 소멸시켰다. 이명 3개월 차가 넘어가면 만성이 된다는 믿음부터 깨부시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이명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예전 이명 카페에서 치유 사례 글들을 읽다 보면 갑자기 어떤 영양제를 추천하면서 링크를 걸거나, 본인을 통해 구매하면 더욱 싸게 살 수 있다느니 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 그러면 안 된다. 이명은 정말 힘든 증상이기 때문이다.
내 글을 보고도 누군가는 출간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당신이 플라시보다' 책팔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지금은 저자 디스펜자를 좋게 보지 않는다. 그 사람이 많은 사람들에게 기적을 선사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너무 돈벌이에만 치중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신이 플라시보다'는 질병으로 인해 절망 속에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비슷한 책으로 비타북스 출판사의 <'미라클', 이송미 저> 도 좋다.
만일 당신이 현재 이명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지금은 당신이 기적의 존재임을 깨닫기 위한 최고의 순간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