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은 김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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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 中

August 10, 2024

이명이 들리는 사람들은 이명의 소리를 저마다 아주 다양하게 표현한다. 가장 흔한 이명 소리는 '위잉~', '삐이~' 하는 고음 소리로 매미 소리나 쇠를 가는 소리 그리고 전자기구의 전파음 등으로 표현한다. 이런 고음과 달리 저음의 이명을 호소하는 경우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웅웅거리는 엔진 소리 등이 들린다고 한다. 내 이명은 처음에는 '삐이~' (방송같은 데서 삐처리 한다고 하는 바로 그 소리) 하는 고음이었고, 시간이 조금 흐르자 더 높은 음으로 변하면서 '위잉~' 으로 들렸다. 기상 직후엔 '츠~' 소리로 들리기도 했으며, 오전엔 소리 양상이 곧잘 변했지만 결국 '삐이~' 소리를 하루 종일 듣고 있어야 했다. 이러한 '삐이~' 하는 소리는 정말 한순간에 찾아와서 없어지질 않았는데 전조증상이 분명 있었다. 청각과민 증상이었다. 내 직업은 주식이나 선물을 매매하는 일이고, 컴퓨터로 일을 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컴퓨터에 팬 돌아가는 소리에서 '둥둥~' 하는 진동음을 느꼈다. 나중에 나는 지인들에게 실험을 시키며 청력이 정상인 모든 사람이 컴퓨터 팬 돌아가는 소리나 환풍기 소리를 초집중해서 들으면 바람 소리와 함께 진동음을 함께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집중을 하지 않아도 컴퓨터만 켜놓으면 그동안 듣지 못했던 '둥둥~' 하는 진동음이 머리를 가득 채웠고, 그 소리는 마치 심장 뛰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해서 매매에 여간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엔 컴퓨터 문제인 줄 알았다. 하지만 화장실을 비롯해 환풍기가 설치된 곳에서 그 진동음을 더 크게 느끼며 내 귀에 문제가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유튜브에 청각과민에 대해 검색하자 끔찍한 영상도 볼 수 있었다. 청각과민증에 걸린 외국의 어떤 남자가 정상인보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몇십 배 크게 듣게 돼서 늘 귀를 막고 있고,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영상이었다. 불안감이 엄습했고, 나는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내가 처음으로 방문한 이비인후과는 압구정동에 위치한 미래이비인후과였는데 내가 상담했던 선생님이 탤런트 송윤아의 친오빠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병원에서는 청력검사부터 시행했고, 청력은 모두 정상이었다. 선생님께 내 증상을 설명했다. 귀를 막고 있으면 (당연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컴퓨터 팬 돌아가는 소리나, 환풍기 소리를 들으면 그동안 들리지 않았던 '두두~' 하는 진동 소리가 함께 들린다고. 그때 선생님의 입에서 '이명'이란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청각과민 이후 귀에 대한 검사를 며칠 동안 한 터였기 때문에 나는 이명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선생님에게 "귀를 막으면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바람 소리 같은 것에 노출되었을 때만 어떤 소리가 함께 들리는데 그래도 이명이에요?" 하고 물었다. 선생님은 일단 약을 먹고 경과를 지켜보자고 하셨다. 그렇게 스테로이드 알약을 처방받았다. 그날 약을 먹고 잠을 푹 잤다. 다음 날 아침 컴퓨터를 켜봤고, 그 진동음을 들으려고 해봤으나 들리지 않았다. 다시 본래 상태로 돌아온 것이다. 내가 그날 아침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기분이 정말 좋았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 나를 괴롭히던 청각과민증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고 생각했고, 스테로이드 약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가까운 후배를 불러 맛있는 점심을 사 먹고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고요한 방에 들어서자 왼쪽 귀에서 '삐이~' 하는 소리가 나고 있음을 인식했다. 잠시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수시간 지속되자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이명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네이버 이명카페에 가입했는데 그곳에 글들을 읽을수록 마음은 착잡해져만 갔다. 긍정적인 글들은 보이지 않았고, 대부분이 나처럼 이명이 막 시작돼서 패닉에 와있거나 수개월, 수년째 지속되어 마지못해 살고 있다는 암담한 글들이었다. 무엇보다 나처럼 청각과민이 먼저 오고 이명이 시작된 케이스들의 글들도 접하다 보니 내가 지금 겪는 일이 예삿일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가까운 지인 몇 명에게만 내가 겪는 일에 대해서 털어놓았고, 청담소리이비인후과가 귀를 잘 본다고 소개를 받았다. 청담소리이비인후과를 처음 방문했을 때 나는 이호기 선생님이 아닌 신중욱 선생님께 첫 진료를 받았다. 미래이비인후과에서 받은 청력검사지를 보여드렸고, 내 증상을 들은 신중욱 선생님은 일단 이명카페 글 읽는 것은 절대 금지하고, 며칠 푹 쉬어보라고 했다. 그게 전부였다. 약 처방도 없었고, 그냥 며칠 푹 쉬어보라고만 했다. 예민해져있던 나는 귀에서 이런 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어떻게 쉬냐고 호소했고, 그러자 신중욱 선생님은 나같은 증상을 겪어도 며칠 이내 그냥 좋아지는 사람의 비율이 훨씬 높은데 나처럼 예민한 사람들은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마음을 편히 가지라고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 맞는 말이지만 이명 환자들을 아무리 많이 상대한다 한들 본인이 직접 이명을 겪어보지 못한 의사선생님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이명에 처음 노출되는 사람은 정말 패닉에 빠지게 된다. 그런 사람에게 마음 편히 지내라는 것은 누가 옆에서 날카로운 것으로 찌르는데 고통을 느끼지 말라는 것과 같다. 층간 소음 때문에 살인도 일어나는 세상이다. 그렇게 사람은 듣기 싫은 소리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정신이 나가버린다. 층간소음이야 무엇을 해도 해결이 안 되면 이사라도 가버리면 된다지만 이명은 지구 끝까지 나를 쫓아올 게 분명했다. 이명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이명소리보다 더 큰 소리를 들으며 이명 소리를 차폐시키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 이명소리를 완전히 덮으려면 정말 큰 소리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듣기 좋은 귀뚜라미 소리나, 파도 소리 등을 틀어놨는데 그 소리들도 크게 들어야 했으니 나중엔 그 소리들 때문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렇게 스피커를 끄면 내 귀에선 여전히 '삐이~' 하는 날카로운 고음소리가 울려대고 있었다. 본래 고요한 것을 좋아해 귀마개하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하던 나인데... 이제 그 고요함을 다시는 느낄 수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은 피폐해져만 갔다. 3개월. 나처럼 청력에 이상이 없는 사람에게 이명이 왔을 때 만성으로 넘어가는지의 여부가 결정되는 3개월. 이명카페에서도 그 3개월을 중시했고, 의사 선생님들도 3개월을 넘으면 만성이 되냐는 나의 질문에 부인하지 않았다. 나는 3개월 안에는 반드시 이 소리를 잡아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1편에 썼던 온갖 방법들을 시도해봤다. 하지만 조금도 차도가 없었다. 이명보다 더 무서운 것이 나에게 오고 있었다. 우울증이었다. 이명에 걸리기 전에 나는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믿고 살았다. 많은 것들을 이뤘고, 아직 더 이루고 싶은 것들도 많아서 삶에 무료함은 없었다.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알았고, 결핍도 없었다.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당시엔 시간문제라고 믿었다. 그랬던 나에게 갑자기 찾아온 이명이라는 난치성 질환은 정말 버거운 상대였다. 이명을 겪더라도 사람마다 소리와 강도의 차이가 클 것이다. 나에게 찾아온 이명은 강한 놈이었다.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두통이 밀려올 정도였으니까. ASMR이라고 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소리들을 듣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다. 연필로 글씨를 쓰는 소리, 바람 소리, 계곡 물 소리 등. 그런 소리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소리들이다. 반면 이명소리는 누구나 잠시도 듣기 싫은 소리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소리가 24시간 내내 지속된다고 생각해 보라. 한창 이명으로 고생할 때 차라리 암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암은 눈에 보이고, 수술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은가. 이명은 내가 겪는 증상일 뿐, 어느 병원에서도 내 이명의 강도나 소리를 측정해 줄 수 없다. 따라서 학계에서도 이명은 객관적으로 진단할 수 없기 때문에 이명을 병으로 분류하지 않고, 증상으로 분류한다. 참으로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증상이 아닐 수 없다. 우울증이 극심해지며 나는 신경안정제와 항우울제도 먹기 시작했는데 오래 먹지 못했다. 그런 약들을 먹을수록 이상하게 나는 우울감이 더 극심해졌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라도 이 듣기 싫은 소리만 사라지면 나는 다시 행복하게 살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온갖 특효약과 치료 그리고 다양한 정신 요법을 체험해 봐도 이명은 사라지지 않았고, 이제 오른쪽 귀까지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극심한 고통의 나날들. 당시 나를 본 사람들은 얼굴에 생명이 없어졌다고들 했다. 내가 거울을 봐도 얼굴에 윤기는 찾아볼 수 없었고, 눈은 퀭하니 좀비 같았다. 그렇게 극심한 고통의 나날들 속에서 이명 3개월 차도 지나갔고, 2020년이 다가왔다. 우한폐렴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질병이 코로나19가 되면서 전 세계로 번져가고 있었다. 2020년 초의 분위기는 확실히 그랬다. 이 질병으로 인해 인류가 종말이라도 할 것처럼 공포감을 주는 뉴스들 그리고 암울한 분위기.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암울한 분위기가 나에겐 위로가 되고 있었다. 세상에서 나만 힘든 것이 아니구나 하는 그 마음이 나에게 유일한 위로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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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은